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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디즘 마조히즘 ...

by samasm 2013. 12. 22.
사디즘은 프랑스의 작가 '마르키스 드 사드'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사드는 네 명의 변태적 성적 취향을 가진 부자가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 각종 성도착적 행위와
성고문을 벌이는 것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소돔 120일>이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탈규범적 성행위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주었다거나 음탕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쓰인 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실에서의 사드도 작품에서처럼 여성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며 쾌감을 얻는
폭력적인 성 학대죄로 감옥에 갇혔다고 한다.

사드가 작품 속에서 추구했던 쾌락은 사회가 개인에게 일방적으로 가하는 폭력인
'금기'의 위반과 연결되어 있다.

사회가 규제하는 금기를 위반하되, 금기를 위반하는 주체는 통제력을 잃지 않고 온전한
이성과 자기통제를 갖추었기 때문에 쾌감이 더욱 극대화되는 것이라고 사드는 생각했다.

사드가 작품 속에서 추구했던 쾌락의 중요한 요소가 '금기의 위반'이었다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사디즘가학행위만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를 보인다.

마조히즘은 오스트리아의 작가 '레어폴트 폰자허 마조흐'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그는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는 소설 <모피를 입은 비너스>를 발표했는데,

애인에게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노예처럼 혹독하게 대하고 다른 이성과
데이트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심리적인 상처를 줄 것을 요구하는 피학증의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이었다.

소설에서 그려지는 마조히스트고통, 처벌, 굴욕을 통해 만족감을 얻는데,
쾌감을 얻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불안'이었다.

고통이 가해지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고통에 대한 강렬한 불안감과
기대감이 교차하면서 쾌감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실존하는 두 인물의 삶과 작품에 나타나는 코드를 사디즘마조히즘이라는
용어로 발전시킨 자는 폰 크라프트에빙이었다.

1886년 크라프트에빙은 두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디즘은 이성을 난폭하고 잔인하게 다루고 싶은 충동이 반영된 성적 도착,
마조히즘은 무조건 지배받거나 굴욕과 학대를 당함으로써 성적 만족을 느끼는 병적인
심리상태로 정의 내렸다.

후에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이를 성적욕구의 구성요소로 다루는 등,
심리학자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친다.

심리학자들은 대부분 사디즘마조히즘의 원인을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기억에서 찾는다.

유아기 때 성적 표현과 욕구가 억제당하면서 갖게 되는 강한 적개심의 표출이라고 보거나,
아동기 때 어머니나 아버지 등 친밀한 대상과의 관계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인 인격체로
성장할 시기에 정상적인 성적가치관이 형성되지 못했거나 혹은 독립적 개별성이
불완전한 아이가 부모와 일찍 분리될 경우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서
타인을 지배하거나 혹은 지배당하는 방식으로 성격이 형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어떤 심리학자는 현실적으로 사람은 누구나 사디즘마조히즘의 성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들은 사디즘마조히즘을 변태적 성행위나 성적 쾌감과 연결하는
이전의 논의에서 벗어나 더욱 확장된 의미의 사디즘마조히즘을 다룬다.

즉, 사디즘은 타인에게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주어 자신의 공격본능을 표출함으로써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마조히즘은 타인의 힘을 빌려 자신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모욕을 가하면서
희열과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이 폭력을 당하고 파괴되도록 의도적으로 행동한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을 향한 사디즘'의 일종인 셈이다.

이런 논의에 따르면, 정반대의 성질인 듯 보이는 사디즘마조히즘은 결국
'타인이나 자신을 대상으로 인간 내부의 근본적 본능인 폭력성의 표출'
이라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견해에서는, 사디즘마조히즘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거나
불신과 억압된 분노를 품고 살게 만든 무책임한 생활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기질이라고 분석한다.

 



사디즘 마조히즘을 성적인 측면보다 '폭력성의 표출'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면,
사디즘마조히즘은 인류의 역사와 동행해왔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 사건에서 발견되는 사례들에 숨은 사디즘마조히즘, 그 폭력성의 측면을 들춰보자.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성은 전쟁, 학살, 차별, 박해 등 사회·정치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

플라톤(BC 429~BC 347)은 「공화국(republic)」에서
'사형당한 사람의 시체를 보고 참을 수 없는 성적욕망에 사로잡힌 사나이'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했고,

루크레티우스(BC 94~BC 55)는 책
「만물의 본성에 대하여(De Rerum Natura)」에서
'죽음과 싸우고 있는 불행한 뱃사람의 조난을 언덕 위에서 구경하는 것은 유쾌한 일'
이라고 표현하였다.

두 글은 기원전에도 고통과 죽음에 직면한 타인의 모습에서 쾌감이나 성적 흥분을 느끼는 사디즘이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또한 중세의 화가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이나
'지옥의 형벌'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데,

잔인한 형벌수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타인의 모습을 충실히 그리면서
자신의 그림에 만족했을 그들에게도 무의식적인 사디즘 혹은 절대자에 대해
무조건 순종하는 모습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종교적 마조히즘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폭력성은 우리의 일상에서 여러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미처 사디즘마조히즘이 반영된 것이라고 인식하지 못한 채
그러한 폭력성에 길들고 있다.

인터넷에 댓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고통을 가할 댓글을 올리면서 즐거워한다.

또한, 회사나 군대에서 상사나 고참은 아랫사람에게 지시를 내리고
아랫사람이 복종하는 모습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낀다.

현대인의 비참하고 부조리한 일면을 웃음과 함께 제시하는
'블랙유머'도 인간의 내재된 폭력성, 사디즘의 일종이다.

도박, 매춘, 부정부패, 범죄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이나 인간의 잔인한 본능을
유머러스하게 제시하거나 비꼼으로써 우리는 통렬함이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블랙코미디나 의도적으로 뼈있는 말을 내뱉는 유명 인사들의 행위는,
이러한 내재된 폭력성을 교묘한 형태로 분출함으로써 은밀하게 카타르시스
쾌감을 느끼는 사디즘의 변형된 형태인 셈이다.

변형된 마조히즘도 존재한다.

스스로 만들어낸 피해의식을 바탕으로 무형의 가해자를 만들어내어
자신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마조히즘적 정서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많다.

범죄자들은 자신의 노력과 극복의지의 여부를 떠나서
사회의 구조와 제도가 자신을 이렇게 파괴시키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면서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는다.

가난, 취업난, 학벌, 외모차별 등 사회구조가 가하는 폭력과 부조리함을 적극적으로
극복하기보다는 그에 굴복하면서도 가끔 사회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일탈적인 행위를 하는 것으로 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반사회적 범죄행위를 하거나 스스로를 파괴하는
우울증, 자살 등의 극단적인 결과를 선택하기도 한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보였던 여주인공의 사디즘적인 면모와
남주인공의 마조히즘적인 면모가 대중에게 일상적으로 혹은 재미있게 받아들여질 만큼,
이제는 더 이상 사디즘마조히즘은 처음 용어가 등장했던
1800년대처럼 변태적인 이상성욕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디즘마조히즘이 인간의 폭력성과 결부되어 있는 이상
일상 속에 항상 잠재되어 있고, 언제 어디서 변형된 형태로 드러나게 될지 모른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에 대해 자신은 아무 상관없다는 식으로 지나치게 결백한 태도를 보이거나,
혹은 지나치게 미화시키려는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다고 보인다.

분명한 것은 '나'를 구성하는 자연스러운 요소로 사디즘마조히즘
인간의 내면에 은밀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